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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밀가루 반죽

요즈음은 참 좋은 세상이다. 대부분의 음식이 포장으로 판매되어 잠깐 끓이거나 마이크로웨이브, 에어프라이어의 버튼 하나로 먹거리가 준비된다. 맛도 있고 시간도 절약되어 사람들의 손이 이전보다 많이 가벼워졌다. 음식을 만들고 요리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음식은 역시 정성과 시간을 들인 손맛이 아닐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준 칼국수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매운 고추와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마늘을 다져 넣은 양념장을 얹어 먹는 칼국수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멸치와 채소를 우려 만든 국물도 맛있거니와 면의 쫄깃한 식감이 입안에 느껴지는 감칠맛은 요즘은 흔히 느낄 수 없는 손맛이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 앉아 밀가루 반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판에 붙지 않게 밀가루를 살짝살짝 뿌려주는 게 내 소임이었다. 어머니는 눈짓으로 여기에 뿌리라 하면 나는 손에 움켜쥐었던 밀가루를 때에 맞춰 뿌리곤 했다. 반죽은 어머니의 손에서 주물러지고 치대지고 간간이 뿌려지는 밀가루 투척과 함께 긴 막대를 이용해 골고루 밀어내다 보면 떡 덩이 같았던 반죽은 신기하게도 얇고 넓적한 판이 되어있었다. 이내 얇게 펼쳐진 반죽을 둘둘 접어 쓰윽쓱 썬 칼국수가 준비되었다. 잘했다고 손뼉 치는 손에서 밀가루가 펄펄 날려도, 얼굴에 분칠을 해도 마냥 기뻤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다니던 교회는 언덕 위에 있었다. 교회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망졸망 집들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 버스 정거장과 시장이 보였다. 시장 앞쪽으로 상가가 있는데 왼쪽 귀퉁이에 중국집이 있었다. 성가 연습을 마친 후 가끔 중국집에서 회식을 했다. 단연 짜장면, 짬뽕이 인기 메뉴였다. 주문이 들어가면 이내 반죽을 탁자 위에 탁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소리가 큰 지 그 소리가 식당 내부에 가득했다. 그 집의 면발은 쫄깃하다고 소문이 나 동네의 맛집이 되었다. 정말 쫄깃하고 식감이 있었다. 좀 시간이 지나도 불지 않고 탱탱했다. 나이가 지극한 주인은 늘 하얀 앞치마를 목에 걸고 요리를 만들면 아내는 손 빠르게 그 음식을 손님에게 서빙했다. 식탁 위에 놓인 짜장면 짬뽕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던 것을 기억한다.   시카고에 정착해 살아간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간다. 그 덕에 여러 나라의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아프리카 자메이카 음식도, 히말라야 아래 작은 동네의 네팔 토속 음식도, 동유럽 폴란드 음식도 프랑스, 이탈리아 음식도 입에 붙을 만큼 입맛이 국제화가 되었다.     그 중 밀가루 음식인 파스타는 입에 잘 맞는 음식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는 매일 파스타를 먹었고 이제는 시카고 어디에서나 쉽게 파스타를 만나게 된다. 칼국수의 맛이 다 같은 식감이 아니듯 파스타 역시 다 같은 맛이 아니다. 그냥 만드는 것 같아도 장인의 숨결과 손의 온도를 버무려 지문 같은 파스타가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예술의 경지와 견 줄만하다.     단지 음식을 만드는 일 외에도 모든 일에는 열정이라는 에너지와 정성이라는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손의 따스함과 코끝의 향기를 더해 음식도 꽃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작은 밀가루 반죽이 여러 모양과 색깔의 파스타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일상에서 만들어 내는 작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것도 밀가루를 반죽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손의 열정과 따뜻한 마음의 자세라면 어머니의 칼국수 맛처럼 그 삶도 맛갈나는 일상이 되지 않을까? 파스타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향기로운 시간들로 피어나지 않을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밀가루 반죽 밀가루 반죽 밀가루 투척과 이내 반죽

2024-10-21

[글마당] 멸치 똥을 따고 싶지만

신기하게도 자다가 눈을 뜨면 새벽 4시다. 다시 잠들기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자려고 누워 있는 것도 힘에 부친다. 창밖의 새들이 조잘거린다. 부지런한 새들은 나에게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잠을 다시 자려고 누워서 버티는 것이 한심하다. 벌떡 일어났다.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봤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길바닥이 거무칙칙하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하얀 차 한 대가 물결치는 소리를 내며 길 건너 건물 앞에 멈췄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호기심으로 그 누군가를 나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차는 한동안 깜빡이등을 켜고 있다가 그냥 떠났다.     멸치 똥이라도 따자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동칸을 뒤적거렸지만, 멸치가 없다. 한국장을 간 지가 오래되었거니와 간다고 해도 비싼 멸치를 선뜻 집어 올 수가 없었다. 박스로 사다가 쟁여 먹던 예전과는 달리 작은 포장 멸치를 사 왔었다. 다듬을 틈도 없이 이미 바닥이 났다. 밥상 위에 수북이 놓고 멸치 배를 가르던 시절만 해도 여유로웠구나!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미국장에 비해서 한국장은 손님에게 겁주듯이 올린다. 지금 이 시간에도 라벨기로 올릴 가격을 찍고 있겠지? 멸치가 뭐라고. 이젠 고만 먹자. 한국장도 가지 말아야지.   아침에 오트밀 죽을 손수 해 먹는 남편을 위해 빵이나 구워야지. 남편이 구수한 빵 냄새가 나면 환한 얼굴로 좋아하겠지. 오트밀 한 컵과 밀가루 한 컵에 베이킹파우더와 소금 그리고 설탕 대신 건포도와 호도를 넣어 훌훌 섞어준 다음 버터 대신 올리브 오일과 달걀과 우유를 넣고 슬슬 섞어서 오븐에 넣었다. 이스트를 넣고 숙성시켜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과정이 복잡한 빵은 이따금 아주 가끔 기분이 당길 때만 한다. 대부분은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간단히 만들어 먹는다.     남편은 옥수수빵을 좋아한다. 어릴 때 학교에서 얻어먹던 기억 때문인듯하다. 60년대, 그 많은 학교에 아이들의 고픈 배를 채우라고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 옥수숫가루를 보내줬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말을 되뇌곤 한다. 미국에 와서 보니 이곳 사람들이 간편하게 먹는 콘 머핀이다. 옥수숫가루를 사야지 하면서도 깜박 잊고 밀가루만 사 온 것이 못내 아쉽다.   남편은 건강에 나쁘다는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식당도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으려고 애쓴다. 집에는 설탕도 미원도 없다. 남들이 우리 집 음식을 먹으면 맛이 없다고 하겠지만, 건강식이라고 설거지하기 좋게 그릇을 싹싹 비운다. 마치 스님들이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공양 그릇 비우듯.   빵 반죽을 오븐에 넣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허드슨강 저 멀리 뉴저지가 어둠을 뚫고 스멀스멀 밝아진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멸치 포장 멸치 밀가루 반죽 한동안 깜빡이등

2022-03-11

[이 아침에] 그리움으로 빚는 만두

 새해 첫날,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향했다. 올해는 만두피를 직접 만들 작정이다. 밀가루를 주먹으로 치대 반죽을 하고 젖은 헝겊을 덮어두었다. 전날에 미리 당면을 삶아 다지고, 속을 털어낸 김치도 잘게 썰어 베보자기에 짜서 물기를 빼놓았었다. 물기 뺀 두부와 숙주나물 다진 것, 간 돼지고기를 섞다보니 만두소가 커다란 그릇에 하나 가득이다. 이 많은 걸 언제 다 만드나? 괜히 시작했나? 시작하기 전에 생각이 오락가락이다.   해마다 새해맞이 음식은 나 혼자서 기름내를 맡아가며 산처럼 녹두전을 쌓아놓고 냉동실에 빚은 만두를 얼렸다. 미국이니 한국처럼 명절 기분을 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고생한다고 투덜대도 그 투정을 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는 이곳은 LA가 아니던가.   녹두빈대떡을 안 부친다고 눈치 줄 사람도 없는 일이고 정 먹고 싶으면 간편하게 한국마켓에서 파는 만두를 사다 끓이면 되는 일이다. 연말이라고 밤늦도록 친구들과 쏘다니며 들떠있는 딸들더러 ‘만두 좀 같이 빚자’고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부탁이 통할 리 만무다.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한 딸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보태면 좋겠지만 지금도 두 딸네가 모두 각자 바쁘다.   ‘내가 만든 만두는 맛이 없으니 그냥 사 먹자’는 남편이 야속해도 나 혼자 나무 도마에 반죽한 밀가루를 떼어 밀대로 밀어 동그랗게 만들었다. 먼저 만두 한 개를 만들어 끓인 물에 익혀서 간을 봤다. 입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와 댕글댕글한 당면이 왠지 겉도는 느낌이 났다. 뭐가 문제지? 재료는 똑같은데 왜 예전 맛이 나질 않는 걸까?   외할머니 생전에 친척들이 모이면 남자여자 할 것 없이 상에 둘러 앉아 만두를 빚었다. 나이 어린 나까지 고사리손을 보태니 양푼에 가득했던 만두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다. 설설 끓는 곰국 국물에 썬 가래떡과 만두를 넣어 한소끔 끓인 만둣국에 양념장에 버무린 소고기 고명은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초간장에 찍어 먹던 만둣국은 추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모양이다.   뿐만인가. 설날 전에는 너나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만두를 빚었다. 맛 좀 보라며 앞집에서 만두를 갖고 오면 엄마도 만두를 챙겨 내게 이집 저집 배달을 시켰다. 만두를 돌리는 심부름 또한 나눠주는 기쁨이고 재미였다. 손맛에 따라 김장김치 맛이 다르듯이 만두 맛도 그러했다. 고기소를 많이 넣은 외할머니의 만두 맛은 든든한 맛이 났다. 엄마가 만들었던 우리 집 만두는 김치소를 많이 넣어 입안에서 사각거리는 식감이 느껴졌다. 솜씨가 있든 없든 온 집안 식구들이 달라붙어 만들었던 만두는 마켓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그리움이고 추억이다. 내가 만든 만두는 맛이 없다는 남편은 아마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쉬엄쉬엄 만두를 다 빚었다. 눈대중으로 치댄 밀가루 반죽도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았다. 녹두전과 얼린 만두를 배달할 일만 남았다. 딸네로 향했다. 운전하는 동안 만두가 녹아 달라붙을까 얼음 팩도 넣었다. 내가 만든 만두는 사랑으로 빚어서 혼자 만들어도 힘들지 않다. 권소희 / 소설가이 아침에 만두 동안 만두가 모두 만두 밀가루 반죽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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